사설 국립의대가 수학문제인가, 대학의 점수에 국가의 판단을 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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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봉주 변호사 작성일 26-09-06 15:21 댓글 0본문

홍봉주 변호사(전.국민권익위 비상임위원)
전남 국립의대 후보대학 선정 결과, 순천대 89.15점, 목포대 87.85점으로 두 대학의 점수 차이는 불과 1.30점이었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이 격차의 약 90%에 해당하는 1.17점이 ‘교원 확보계획’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숫자를 보며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전남에 국립의대를 왜 만드는가. 교수를 조금 더 쉽게 확보할 수 있고, 교육시설을 조금 더 잘 갖출 수 있는 대학을 고르기 위해서인가.
결코 아니다. 전남에 국립의대를 설립하자는 국가정책의 출발점은 전남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취약성을 줄이고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어느 대학이 의대를 더 잘 만들 수 있는가’와 ‘어디에 의대를 두어야 국가가 해결하려는 의료불균형을 가장 크게 줄일 수 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전자는 대학의 준비 역량과 수행 능력을 묻는 것이고, 후자는 국가가 어디에 의료시설을 두어야 국민의 생명을 더 잘 지킬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물론 교수나 병상의 수, 투자 금액의 규모는 대학의 평가지표로 명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섬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최종치료병원까지 도달하는 시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환자가 골든타임 내에 치료받을 가능성, 고령인구와 의료취약인구의 집중도 같은 문제는 대학의 준비 정도만으로 온전히 측정할 수 없다. 89.15점이라는 대학평가 결과만으로 ‘전남 어느 곳에 국립의대를 두어야 하는가’라는 국가적 질문의 최종 답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이 의대를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를 평가하는 것과 국립의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36년이라는 시간이다. 목포와 서남권 주민들이 국립의대를 요구해온 36년은 단순히 남들보다 먼저 손을 들었다는 ‘선점의 역사’나 기득권의 연대기가 아니다. 아픈 가족을 데리고 목포의 병원을 찾았다가 치료할 수 없어 다시 광주로 향해야 했던 경험, 촌각을 다투는 환자를 태우고 먼 길을 달리며 골든타임을 걱정해야 했던 가족들의 기억이 쌓인 시간이다. 즉, 36년은 주민들의 절박성이 고스란히 축적된 ‘누적된 의료취약성의 증거’로 보아야 한다.
현재의 조건만 놓고 보면 의료시설과 생활여건이 좋은 지역은 교수 확보에도 유리하다. 반대로 의료가 부족한 지역은 바로 그 부족함 때문에 교수 확보와 병원 인프라 구축에서도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의료가 열악해서 의대를 세우려다, 정작 그 열악함 때문에 유치 경쟁에서 밀려나는 기막힌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국가정책이라면 왜 36년 동안 동일한 요구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 절박한 요구가 생겨난 의료공백이 무엇이었는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따라서 이제 중앙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1.30점 더 높은 숫자에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을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국가의 의료정책적 판단을 더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도서지역의 특수성이나 오랜 기간 누적된 의료취약성을 ‘탈락한 지역에 무엇을 더 지원해 줄 것인가’라는 사후대책의 문제로 돌리는 태도다.
실질적 의료접근성과 필수의료 격차 해소가 국립의대를 만든 본래 목적이라면, 이러한 요소들은 탈락한 지역을 달래기 위한 사후 지원책이 아니라 국립의대와 대학병원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결정할 때부터 중요하게 따져야 할 기준이다. 이 순서를 뒤집어 대학 역량 중심으로 입지를 정한 뒤, 그래도 남는 의료불균형을 별도의 지원책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가가 애당초 해결하려던 핵심 과제를 정작 가장 중요한 입지결정 과정에서는 뒤로 미루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법원은 하급심 판결에서 결론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판단요소가 빠졌다면, 패소한 사람에게 다른 혜택을 주는 것으로 문제를 덮지 않는다. 빠진 판단요소까지 포함해 원래의 쟁점을 다시 판단하도록 한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번 심사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국가의료정책적 요소가 있다면 사후 지원책으로 대신할 것이 아니라, 국립의대와 대학병원의 최종 입지를 결정하는 과정에 직접 반영해 다시 검토해야 한다.
1.30점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대학의 평가가 끝난 지금, 오히려 이 지점부터 정치와 행정의 책임 있는 판단이 시작되어야 한다. 국립의대 설립은 단과대학 하나를 추가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대학병원과 의료인력, 교육과 연구 기능이 함께 움직이며 향후 수십 년의 전남 의료지도를 그리는 중대한 사안이다.
대학의 점수에 국가의 판단을 더하라.
그 판단은 결정이 끝난 뒤 내놓는 보완대책이 아니라, 국립의대와 대학병원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바로 그 결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국가가 놓친 판단은 사후에 보상할 일이 아니라, 빠뜨린 요소를 다시 올려놓고 제대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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